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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재

청송갤러리

  • 2021-01-12

화왕산

창녕은 내 고향이라 항상 그리움이 묻어 있는 곳이다. 창녕군 고암면 간적 마을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수학했는데, 초등학교, 중학교를 10리 이상 걸어 다녔다. 특히 중학교는 비록 야산이지만 산을 3개나 넘는 산길을 걸어 다녔다. 그러다 고등학교는 부산으로 유학가게 된다. 그 이후 거주지는 학창 시절은 부산이었고, 사회생활 근거지는 서울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적에 우리 마을 뒷산인 왕령산旺嶺山을 2~3차례 올랐을 뿐 창녕의 진산 화왕산은 올라가본 적이 없었다. 오늘은 마침 창녕 등기소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일을 마치고 시간도 있고 해서 화왕산을 생전 처음으로 올라가봐야지 하고 나섰다. 창녕은 수구레 국밥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 있어 창녕 시장터를 찾아 수구레 국밥 한 그릇으로 점심 끼니를 하고 옥천계곡을 따라 화왕산을 올라갔다. 


화왕산은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과 내 고향인 고암면의 경계를 이루는 높이 757m 산이다. 경상남도 중북부 산악지대에 위치해 낙동강과 밀양강이 둘러싸고 있는 창녕의 진산이다. 용암 분출로 형성된 화산으로 옛날에는 ‘불뫼’나 ‘큰불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정상 근처에는 용지龍池를 비롯해 3개의 분화구가 형성돼 있다.

오늘 화왕산 정상에 올라서니 아무도 없다. 나 혼자뿐이다. 북쪽으로 바라보면 저 멀리 우리 동네 뒷산인 왕령산이 훤히 보인다. 그 산 아래 부모님 산소가 모셔져 있는데, 먼저 오늘은 찾아뵙지 못하므로 고개를 숙여 용서를 빌고 난 후, 정상부에서 수행을 계속한다.

화왕산은 화산이라서 그런지 산 정상 둘레는 깎아지른 듯 절벽을 이루고 있고, 정상부에는 사적으로 지정된 화왕산성(둘레 약 3km) 안에 5만~6만 평에 달하는 넓고 평평한 초원이 펼쳐져 있다. 정상의 깎아지른 듯한 바위 근처를 걸어가면서 아래를 바라보면 그냥 마구 오금이 저린다. 옛 선조들이 이런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산성을 지은 모습도 장관이다. 그 둘레만 무려 약 3km에 이른다.

화왕산은 기암괴석에 억새 군락지와 참꽃(진달래꽃)으로 유명하다. 특히 5~6만 평을 뒤덮은 억새 군락지는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우리나라 어느 산에 못지않은 대규모다. 가을 어느 날 활짝 피어난 억새꽃은 점점 익어 은빛 아니 플래티넘 빛깔을 띨 것이다. 평평한 산꼭대기에 플래티넘 빛의 물결이 출렁거릴 때, 가을 화왕산은 눈과 바위 때문이 아니라 억새꽃으로 또 하나의 백두를 이룰 것이다. 겨울의 포근한 설국을 연상케 하는 화왕의 가을 산은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렌다. 

이른 봄 화왕산에 참꽃이 피면 온 산이 불타오르듯 붉게 물들 것이다. 넓은 군락지에 피는 참꽃의 황홀함은 가을 억새 못지않다, 억새 군락지를 뺑 둘러 형성된 가파른 절벽(화구벽) 위로 참꽃 불이 붙으면 장관을 이룰 것임에 틀림없다. 


화왕산 정상에서도 어느 산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상 주를 한 잔 하고 싶은데 아쉽게도 주점이 없었다. 거기에도 당연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보이지 않는다. 날씨가 너무 추운 탓일까? 등산객이 적어 장사가 되지 않아서일까? 아쉽지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화왕산의 이런 아름다운 풍광 때문일까 화왕산은 절찬리에 방영했던 드라마 <허준>, <대장금>, <상도>, <왕이로소이다>, <왕초> 등을 촬영했던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아직도 화왕산에는 이들 드라마 세트장이 남아 있었다.

화왕산 정상에서 옥천 쪽으로 내려오면 1700년 전에 창건했다는 아기자기한 관룡사가 나온다. 관룡사에서 정성으로 치성을 드리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관룡사를 찾아 나도 한 가지 소원을 빌어 본다. 옥천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해 하산하니 배가 출출해온다. 오후 6시경이니 날도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식당을 찾아보니 간이 편의점 겸 주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 들어가니 내가 애타게 찾고 있던 ‘화왕산 막걸리’가 있었다. 당장 창녕 산 토종 콩으로 만든 두부 한 모를 안주로 해, 내게는 거의 치사량 수준이지만 화왕산 동동주 한 잔, 화왕산 생 막걸리 두 잔을 비웠다. 그랬더니 바로 효과가 나타난다. 극락과 천당이 따로 없었다. 서울에 사는 동무들에게 맛 뵈려고 화왕산 생막걸리 아홉 병, 화왕산 동동주 1.8리터짜리 한 병을 샀다. 


아침 6시 30분에 서울을 떠나 창녕에서 일을 마치고, 서울에서 출발한 지 꼭 12시간 반이 지난 7시경에 창녕에서 서울로 출발했다. 오늘 창녕의 진산 화왕산에서 듬뿍 받은 ‘불을 뿜는 듯 뜨거운 기운’과 ‘고향의 포근한 온기’를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모두 나눠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