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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재

청송갤러리

  • 2020-11-29

팔공산(八公山)

팔공산八公山 60회차 묵언수행 2017. 12. 2. 토요일

조상님들 뵈러 가는 길에 갓바위 부처로 유명한 대구의 진산 팔공산을 반종주 묵언수행하다

2017년 12월 3일은 시제時祭 날이다해마다 시제 날에는 고향에서 조상님들 묘소를 돌며 제사를 올린다서울에서 시제가 열리는 고향 창녕까지는 약 290km, 자동차로 3시간 반 정도 걸리는 먼 거리다시제에는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 것이 자손으로서의 도리다그러나 한편으로는 시제만 참석하려 멀고 먼 고향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시쳇말로 낭비라는 생각도 든다그래서 나는 조상님들을 뵈러 가는 길에 임도 보고 뽕도 따겠다는 생각으로 고향 근처에 있는 백대명산 팔공산에서 묵언수행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팔공산은 신라 시대에는 부악父岳중악中岳또는 공산公山이라 했으나 927년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에게 공산 전투에서 대패했을 때장수 신숭겸이 왕건 대신 미끼가 되었고 그와 함께 김락김철 등 여덟 장수가 순절했는데 이를 기리기 위해 조선 시대에 들어 팔공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최근에는 주말에 결혼식이 유달리 많아 묵언수행을 자주 빠지게 됐다그러다 보니 백대명산 묵언수행 계획도 약간 차질을 빚고 있어이번 팔공산 묵언수행은 좀 빡세게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12월 2일 새벽부터 일어나 6시경 집을 나섰다팔공산 들머리로 정한 수태골 제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9시 50분경이었다

수태골 들머리에서 산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여기서 정상인 비로봉을 찍고 동봉을 거쳐 관봉으로 가고 싶은데 괜찮겠느냐고 물어보니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약간 백안시하면서 말한다. “그렇게나 먼 거리를매우 힘들 텐데요.”라고 건성건성 대답하는 게 아닌가원래 경상도 사람들이 좀 퉁명스럽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약간 기분이 상했다더 이상 다른 이들에게 물어봐야 묵언수행에 도움이 될 것이 없다고 판단해 물어보기를 포기하고 <팔공산 자연공원 안내도>를 보면서 수행경로를 스스로 정했다.

여기저기 보이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서 제법 가파른 길을 오른다. 오르는 내내 이 생각 버리고, 또 저 생각 버리면서 천천히 오르다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산꼭대기들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사이에 우뚝우뚝 솟은 철탑들이 섬뜩하다. 팔공산이 통신이나 군사적인 용도로 중요한 위치에 있어 인간들의 편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건설되었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자연의 경관을  너무 훼손하고 있는 것 같아 불만스러웠다. 동봉 석조약사여래상을 지나 무슨 기지국인지 모르겠지만 그 시설물을 빙 둘러 올라가니 드디어 팔공산 정상인 비로봉이 나왔다.

동봉과 비로봉 가는 갈림길 근처에는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이 중생들의 고통을 제도해주기 위해 잔잔하고 평온한 미소를 띠면서 서쪽 비로봉을 향하여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팔공산 정상인 비로봉에 올라가니 이미 여러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있다. 팔공산 산신령에게 산신제를 올리기 위해서인지 제단에 과일을 포함한 제수祭需들이 조촐하게 진설陳設되어 있었다. 어떤 사람이 그 앞에서 팔공산에 대해 열심히 강의하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모두 그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었다. 학생인 듯한 여인에게 무엇 하는 사람들이냐고 물어보니 그들은 팔공산 탐방대원들이고 강의하는 사람은 <팔공산연구소> 소장이라고 한다. 설명하고 있는 강사의 이야기 중 언뜻 들리는 말에 팔공산이 신라가 삼한일통三韓一統을 하는 데 중요한 근거지 역할을 했다고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무엇을 근거로 해서 그런 설명을 하는지는 듣지는 못했다. 내가 알기로는 팔공산의 공산 전투에서 견훤이 왕건을 신라 영역에서 대승하여 후백제가 신라 영역의 주도권을 차지했고, 이를 통해 신라의 멸망은 가속화됐다는 정도다

팔공산 비로봉에서 내려와 동봉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동봉은 가파른 암봉으로 형성돼 있고, 여러 형상을 한 기암괴석들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여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다만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여러 아름다운 형상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어쩔 수 없다. 어느덧 동봉에 도착했다.

동봉에서 비로봉을 바라보면 인공 시설들이 약간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주상절리가 마치 무등산의 서석대나 입석대처럼 세로로 갈라져 있다멀리서 보면 말리는 국수 가락처럼 수직으로 쭉쭉 흘러내리는 아름답고 신기한 모습들이다동봉에서 동쪽으로 북쪽으로 둘러보아도 마치 물결이 일렁거리는 듯한 바위 물결과 밤이면 촛불이 켜져 어둠을 밝혀줄 듯한 촛대 모양의 바위들이 계곡이나 산등성이에 줄지어 서 있었고물개돌고래가 재주를 부리는 듯한 모양의 기암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동봉 근처 양지 바른 곳에 홀로 앉아 먹는 삶은 고구마 두 개, 이것이 나의 점심이다. 산에서는 섭취하는 에너지보다 체내에 쌓인 기름을 태워 몸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수행의 목표이기에 단출하게 준비한 것이다.

간단한 점심 수행을 마치고 갓바위 쪽으로 향했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눈을 즐겁게 하는 여러 신기한 형상들이 계속해서 줄이어 나온다. 바위 위에서도 꿋꿋이 아름답게 자라는 소나무 한 그루가 주변의 바위와 어울려 한 폭의 풍경 산수화가 된다. 갓바위까지는 이제 6.7km 정도 남았다. 갓바위 쪽으로 하산하는 수행자는 오로지 나 혼자뿐이다. 이제 팔공산의 맑고 아름다운 정경을 독차지하면 된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기암괴석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는다. 

염불봉과 신령봉을 지나면서 삿갓봉이 나오고, 삿갓봉에서 은해봉, 노적봉으로 출발한다. 계속 아름다운 경관의 연속이다. 노적봉 정상에서 지금까지의 수행경로를 되돌아보니 팔공산 동남 능선을 꽤 많이 걸어온 것 같다. 이 수행경로를 동영상으로 담아본다. 고구마 2개로는 에너지 충족이 부족했는지 몸이 떨린다. 재빨리 <에너지바>를 꺼내 먹는다. 그것도 2개나. 힘든 수행 길에 에너지를 너무 적게 섭취해도 안 된다. 모든 것은 적당해야 한다는 중용中庸의 교훈이 아닐까.

관봉과 동봉 사이에는 팔공산 CC가 있다관봉과 동봉서봉 사이에서 자연을 훼손하고 있는 현장을 목도하니 기분이 썩 좋지 않다나도 한때는 골프 예찬론자였지만 묵언수행 이후 골프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그렇다고 골프를 끊은 것은 아니지만

이정표를 보니 이제 곧 갓바위(관봉)에 도달한다. 입시 철만 되면 갓바위가 전파를 타는 유명한 곳이지만 나도 오늘 그 유명한 갓바위 부처님을 뵙기 위해 고행을 거듭하며 여기까지 왔다. 수태골에서 비로봉을 거쳐 여기까지 오는 길은 생각보다 순탄하지 않았다. 미끄럼질을 타기도 하고, 밧줄을 타고 오르기도 하고, 많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면서 왔다.

그 유명하신 갓바위 부처님은 팔공산 관봉(850m)에 암벽을 배경으로 조성된 5.48m 크기의 단독 원각상圓刻像이다. 갓바위는 보물 제431호로 약사여래불이라고도 하는데 본래의 이름은 <관봉석조여래좌상冠峰石造如來坐像>이다. 가장 큰 특징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하나의 화강암을 깎아서 환조丸彫 기법으로 조성했다는 점과 광배가 없다는 점이다. 광배는 뒤에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흰 암석이 광배를 대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튼 병풍처럼 둘러쳐진 화강암체로 흰빛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연출하며 신비함을 더하고 있다. 갓바위라는 이름은 이 불상의 머리에 자연 판석으로 된 갓을 쓰고 있는 데서 유래 된 것으로 누구에게나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속설을 간직하고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기도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오늘도 수능이 끝났고 오후 5시가 지났는데도 학생과 학부모로 보이는 분들, 부부로 보이는 분들, 젊은 여인들, 도사道士 비슷해보이는 분들, 각양각색의 많은 분들이 올라와 진지하게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관봉 갓바위 부처님을 알현하고 오후 5시가 넘어 하산한다. 이미 관봉에는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갓바위 부처님께 예불을 드리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갓바위 부처님이 정말 신통력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수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계단은 모두 1365계단이다. 계단을 딛고 내려오는 것도 묵언수행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