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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재

청송갤러리

  • 2020-11-29

백운산(白雲山(강원도))

백운산白雲山(강원도22회차 묵언수행 2017. 3. 1. 수요일

동강의 아름다움에 미혹迷惑당해 9시간 이상을 백운산 품속에서 혼자 헤매다

백운산 들머리인 백운산방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 8분이다백운산 묵언수행 경로 7km지점에서 동강의 부드러움과 아름다운 경치에 홀려 길을 잃어버렸다더군다나 길을 물어볼 사람조차 없었다산 들머리에서부터 원점으로 회귀할 때까지 사람이라곤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묵언수행 중에 마주치는 것 중에 살아서 움직이는 동물들이라고는 까마귀 몇 마리, 새끼 멧돼지 두 마리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움직이지 않은 것들이다. 즉 흙과 돌, 각종 나무들, 족히 20~30cm 정도로 수북하게 쌓인 낙엽들과 마른 풀잎들, 토끼, 고라니와 멧돼지 등 짐승들의 배설물과 응달진 곳에 남아 있는 잔설만이 나를 맞아주었다

백운산 정상 1km 전방에 이르자 갑자기 후다닥 하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주위를 돌아보니 새끼 멧돼지 두 마리가 저벅저벅 낙엽을 밟는 내 발자국 소리에 놀라 잽싸게 어미 멧돼지가 있는 쪽으로 달려 도망가는 것이 아닌가. 이어 크컹, 꾸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 . 어미 멧돼지 소리다. 약간 긴장됐지만 이 정도에 졸아 오금이 저릴 그런 내가 아니다. 혹 덤벼들지 모르는지라 주위를 경계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더욱 당당하게 그리고 천천히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역시 대단하다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음미할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동강이 똬리를 틀면서 백운산 주위를 휘휘 감아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장관이다. ‘High risk, High return’이란 말이 실감났다.

그 장관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 몸과 마음도 동강을 타고 유유자적 휘휘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경치에 빠져 있었다동강의 아름다운 흐름을 좇아가다보니 원점회귀 장소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었다이정표가 부실함을 탓하지 않는다내가 동강에 홀려 이런 사달이 벌어졌기 때문이다이 모든 사달은 모두 남의 탓이 아닌 내 탓이다

벌써 사위는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시각을 보니, 아뿔싸! 벌써 6시가 훌쩍 지나버렸다. 숲속에서 어둠 속을 헤매면서 주차 위치로 원점회귀한 시각은 오후 7시 26분이었다. 백운산은 결코 호락호락한 산이 아니었다. 경사가 급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은 산이다. 수행 중 거의 10수 회나 미끄러졌다. 때로는 5m 이상 썰매 타듯이 미끄러지기도 했다. 그래도 몸 상한  데가 없어 천만다행이었다.

오늘은 완벽한 나홀로 고독 묵언수행의 날이 됐다. 백운산과 동강은 수행자인 나에게 크나큰 교훈을 줬다. 인생에서 장애물을 만나면 때로는 둘러서, 꾸불꾸불 느릿느릿 흘러도 충분히 빠르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교훈을 말이다. 인생을 바르고 빠르게만 살아가는 것이 정도요 아름다움이라는 내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