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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재

청송갤러리

  • 2020-11-29

연화산(蓮花山)

연화산蓮花山 63회차 묵언수행 2018. 1. 13. 토요일

고성 연화산에서 염화시중拈花示衆의 의미를 생각하다

며칠 전 나는 친구들로부터 왜 너 혼자만 독고다이(특공대의 일본어속어)처럼 산에 다니느냐며 따끔한 충고를 들었다나는 그 친구들에 비해 산행 능력이 떨어진다나는 그 친구들이 좋지만 산에 갈 때는 혼자 다니는 것이 좋다그 친구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 신체 리듬과 시간 계획에 따라 자유스럽게 다니는 것이 좋아서다그들의 충고를 듣고 나는 1월 13일과 14일 양일간 경상남도에 있는 백대명산 2좌를 올라가려고 하니 같이 갈 사람은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그렇게 해서 산신령급 친구 2(이 산신령최 교수)과 함께 2018년 1월 13~14일 양일간 경남 지역 백대명산 2좌를 묵언수행하기로 결정했고모든 일정은 플래닝의 달인 이 신령에게 일임했다이 산신령은 13일은 경남 고성의 명산 연화산을이어 14일은 통영 사량도의 명산 지리산을 오르는 것이 좋겠다고 해 동행 친구들 모두는 그렇게 하자고 결정했다

1월 13일 6시 30, 잠실새내역에서 세 명이 만나 연화산이 있는 고성 옥천사 주차장으로 출발한다. 옥천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 50분경이었다. 먼저 수행경로를 옥천사 주차장 - 연화1봉 - 느재고개 - 연화산 - 운암고개 - 남산 - 황새고개 - 선유봉 - 옥녀봉 - 옥천사 - 옥천사 주차장으로 회귀하는 약 8km 구간으로 정했다.

수행 들머리에서 맨 처음 만난 것은 예쁘장하게 생긴 공룡 조각상이다. 이어 공룡들이 뛰어 놀았던 흔적, 발자국 화석을 만난다. 고성은 잘 알다시피 공룡 화석으로 유명한 곳으로 세계 3대 공룡 발자국 화석지로 알려져 있다. 중생대 시기의 고성 지역은 공룡들의 천국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중생대 어느 날, 수많은 공룡들이 거대한 몸뚱이를 이끌고 우리가 수행하는 길인 연화산 일대를 누비고 다녔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 공룡의 발자취를 몸으로 느끼면서 걷기 수행을 시작한다.

들머리들 거쳐 약 1km 정도 솔향을 은은히 품은 수행로를 오르다보니 얼마 안 가서 연화1봉이 나온다이 산에서 안내하는 내용으로는 산 이름 연화산이 한자로 蓮花山인지 아니면 蓮華山인지 불확실하게 돼 있었다안내판에는 蓮花山으로 안내하고 있는데 표지석에는 蓮華峰으로 표기하고 있다표지석이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명색이 도립공원인데 표지석과 안내판의 명칭이 일치하도록 정비하는 것이 필요해보인다.

연화1봉에서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보면 느재고개가 나오고 옆으로는 차도가 있다. 차도 옆에는 이동식 간이 매장도 보인다. 주인인 듯한 아주머니 한 분이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말인데도 산객들이 없어 장사는 안 되는 모양이다. 느재고개에서 차도를 따라 잠깐 가다 보면 왼편에 연화산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나오고, 이정표를 따라가면 편백나무 숲이 나온다.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내뿜는다는 편백나무 숲이다. 겨울임에도 편백나무 향이 수행로 주변을 가득 흩뿌리고 있었다. 심호흡을 하며 피톤치드를 허파 속으로 빨아들인다. 팔을 폈다 접었다 숨쉬기 운동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항상 그렇듯 수행 전날에는 밤을 설치는 경향이 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오늘은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3km 이상 걸었지만 별로 피곤하지가 않다. 편백나무 향과 편백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 때문일까.

느재고개에서 연화산 정상은 불과 30여 분 거리다. 연화산 정상에는 금방 도달한다. 연화산의 높이는 524m에 불과해 낮아서일 거다. 연화산은 반쯤 핀 연꽃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연화산이라는 이름이 수행하는 내내 나에게 화두를 던지고 있다. ‘연화산이 연꽃을 닮았다고? 왜 그렇게 보일까?’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다. 앞서 가던 최 교수가 저 울룩불룩한 작은 산봉우리들이 마치 연꽃잎처럼 보이지 않아?”라고 말한다. 나는 신령들의 말에 거역할 수 없어 아하! 그렇구나.”라고 억지로 대꾸를  했지만 다시 보니 그럴듯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 트랭글에 나타난 수행 궤적을 보니 신기할 정도로 연꽃 모양이다. 옛 조상들은 하늘을 나는 기구나 측량할 기구도 없었을 텐데 하늘 위에서나 봐야 보이는 모양으로 이름을 지은 걸 보면 신통방통하고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화산 정상에서 운암고개를 거치고, 남산 - 황새고개 - 선유봉 - 옥녀봉을 지나니 천년 고찰 옥천사에 도달한다. 신라 문무왕 16(676), 의상 대사가 화엄학을 널리 펼치기 위해 전국 요소요소에 화엄 10찰을 창건했다고 하는데, 옥천사가 그 중 하나라고 전해온다. 창건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중창되다가 임진, 정유왜란 때는 사찰이 전소됐다. 이후 인조 17(1639) 의오 스님이 현몽해 절을 찾아내고 연화산 옥천사라는 이름을 다시 내걸게 되었다고 한다.

옥천사는 매우 특이하다. 세 가지 정도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 첫째, 사찰은 대웅전이 가장 큰 건물로 우뚝 솟아 있는 게 일반적인데 옥천사 천왕문을 들어서면 자방루라는 요새 같은 거대한 건물이 대웅전 앞을 가로막고 있다. 둘째, 전라도의 송광사나 선운사 등 대찰들은 널찍하고 평평한 부지에 자리 잡고 있는데 옥천사는 자방루를 제외하고는 규모가 작은 건물들이 오밀조밀하게 서 있다. 셋째, 조선 후기의 건물들이라 그런지 지붕을 받치는 공포의 익공과 쇠서 등의 부재가 다른 절 보다 훨씬 길고 매우 복잡한 장식으로 구성돼 있다

영조 40(1764)에 세워졌다는 자방루滋芳樓는 정면 7, 측면 2칸 규모로 단층 기둥 위에서만 공포를 짠 주심포계 팔작지붕집이다. 조선 시대는 다포계 건물이 주를 이룬다고 알려져 있지만 자방루는 특이하게 주심포계 건물이다. 자방루의 대들보를 보면 비천상과 비룡이 그려져 있고, 대들보를 받치고 있는 기둥 위의 부재들 하나하나가 내 눈에는 아름다운 조각이요 예술품으로 보인다

옥천사 대웅전은 규모는 작으나 이상하게도 기단은 다른 절보다 확연히 높다. 또 자방루와 대웅전 사이의 좁은 마당에는 당간지주가 4쌍이나 있다. 내 짧은 소견으로는 좁은 마당에 왜 4개나 되는 크고 작은 당간지주가 설치돼 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대웅전의 오른쪽으로 가면 맑은 샘물이 솟아나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옥천玉泉샘이 나온다. 옥천사라는 이름도 이 옥천에서 유래되었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약수터다. 이 샘물은 피부병과 위장병에 좋다고 알려져 지금도 샘물의 영험을 믿고 옥천을 찾아오는 사람들로 붐빈다고 한다. 옥천에 이르러 샘을 살펴보니 표주박 모양을 하고 있는데, 맑은 물이 끊임없이 솟고 있었다. 나는 영험하기로 소문난 이 샘물을 한 바가지 가득 떠서 쭉 삼키며 맛을 본다. 연화산 연 향이 배어 있는 듯한 감로수다. 속이 후련해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 이 샘을 보존하기 위해 1948년부터 옥천각을 세워 보존해오고 있다

옥천에서 감로수를 한 잔을 쭉 들이켜고 우리 일행은 옥천사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연꽃처럼 생긴 명산 연화산은 기암괴석이나 기수괴목은 없다특별한 경관도 아니다그러나 연꽃 향처럼 부드럽고 연꽃 색깔처럼 포근한 육산이다우리나라의 명산은 꼭 명찰을 품고 있다또 명찰을 품고 있기에 명산이 되기도 한다연화산도 바로 그런 산이다

연꽃의 품에 안겨 연꽃 향을 음미하고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으며 오늘 묵언수행을 마무리한다. 내일은 통영에서 배를 타고 사량도로 건너가서 지리산이 바라다 보인다는 사량도의 꼬마 지리산, 별칭 지리망산을 묵언수행할 예정이다